Abroad/EastAsia

베트남-후에-왕궁①

閒林 2018. 4. 23. 01:08

베트남- 후에-왕궁①

(Vietnam-Hue-Citadel)

201x.  Mid-M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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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uec11. 남문(午門)  (Nex-F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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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uec12태화전(太和殿)  (Nex-F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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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uec13태화전뜰에서 본 남문   (Nex-F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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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uec14.  世廟의 廟門  (Nex-F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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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uec15  (Nex-F3)



◑ Huec16   (Nex-F3)



◑ Huec17世廟 본전  (Nex-F3)



◑ Huec18  (Nex-F3)



◑ Huec19  (Nex-F3)



6

◑ Huec20  (Nex-F3)




  1. 왕궁(Royal Palace) 또는 Citadel, Imperial City, 자금성(紫禁城) 등으로도 부른다, 현존하는 베트남 최고의 유적인데 과연 중국 자금성의 이름을 빌려올수 있을지 의문이다. 주위에 호를파고 벽을 쌓은건 크메르 앙코르 형식인데 내부 건물은 중국풍을 주로 따르고 프랑스 건축양식을 이용했다. 남문으로 보통 들어가는데,이곳 매표소가 악명이 높다. 인터넷을 보면 사기당했다는 사례가 제법많다. 베트남 화폐가 단위가 커서 거스름돈을 받아도 한동안 계산이 안된다. 다음날 3개의 무덤을 볼 예정이어서 3 Tombs+ palace 볼수있는 Combo Ticket을 구입했다. 350K(35만동)으로 100K 할인된 금액이다. 500K 화폐를 주니 이 아줌마 10K 지폐가 부족하다며 ?지폐 한장주면 ?지폐한장으로 주겠다고하는데 금액이 커서인지 잠못자서인지 숫자가 귀에 안들어온다. 워낙 악명이 높은 곳이라 무조건 없다고 했다. 사실 첫날이라 잔돈이 있을리 없다. 거스럼돈은 100K 1장+ 10K 4장+ 5K 2장. 걸어가며 생각하니 아마도 50K 한장더주면 100K 한장으로 거스럼돈 준다고 했던 모양이다. 정말이었는지 모르지만 사기칠경우 100K 지폐대신 10K 두장 줬더라도 알아챘을까? [본문으로]
  2. 남문을 들어서면 바로 牌坊이 보이고 그 뒤로 보이는 건물이 태화전(太和殿)이다. 왕이 신하들을 접견하고 집무보는 곳이다. 원래 북경 자금성을 모델로 했으므로 이름도 그대로 베껴쓴 듯하다.자금성의 태화전과 비교하면 아주 초라해 보이지만...안에 왕이 앉았던 황금의자가 있는데 신발벗고 들어가기 귀찮아 안들어갔다. 중앙부 건물중 그나마 유일하게 살아남은 건물이다 [본문으로]
  3. 왕궁은 원래 참파왕국의 도성이 있던곳인데 16세기 중반부터 베트남 응우엔족이 중부를 장악하며 참파를 남쪽으로 몰아내고 꽝남의 수도가 된다. 이 자리에 응우엔왕조 첫왕인 지아롱왕이 새로 왕궁을 짓기 시작하여 두번째 민망(Minh Mang)왕때 1833년 완성했다. 그전의 베트남의 수도는 중국 국경에 가까운 북부 하노이였으나 지아롱은 길다란 베트남을 다스리기 위해 중앙에 수도를 옮길 필요를 느껴 수도를 후에로 옮기고 수도건설을 시작했다. 초기 별명이 자금성이었으니 자금성처럼 구궁(九宮)방위 건설을 염두에 둔듯하다. 왕궁은 크게 9구역으로 나눌수 있지만 그중 서남방과 동남방은 종묘(사원)구역이고 서북방은 왕의 어머니,즉,태후의 거주지고, 동북쪽은 정원으로 꾸며져 있다. 나머지 남문에서 북문까지 이어지는 중앙부분이 왕의 집무실이나 왕과 왕후의 거처가 있었다.프랑스와의 독립전쟁과 미국과 벌인 베트남 전쟁동안 동남방 종묘구역과 중앙 거처구역은 완전히 파괴되어 훼손되었는데 그나마 서쪽의 종묘와 태후의 거처는 온전하게 남았다.다른곳은 복구가 한참진행중이다. 온전한건 모두 서쪽에 있으므로 들어가마마자 서남쪽 世廟(사원)구역으로 향했다. [본문으로]
  4. 왕궁의 관람루트는 다음과 같다. 사진도 이 순서로 배열되어 있다. 먼저 입장부터, 남문(午門)-->서남(世廟)->서문(彰德門)-->서북(靜明樓,延壽宮,長生宮,長安門)-->북방(建忠殿,右廡)-->중궁(勤政殿,太和殿)-->동남(太廟,肇廟=폐허라 사진없다)-->동문(顯仁門)-->동북(幾暇园)-->북문(和平門) [본문으로]
  5. 벽과 문은 붉은 벽돌을 사용하여 형태를 올리고 바깥에 모르타르를 바르고 장식은 중국의 젠넨(剪黏-모르타르로 모양을 만들고 도자기를 잘라 붙이는 조각기법)을 이용해서 꾸몄다. 중국의 푸젠성부근 동남해안 상인들이 해상권을 장악했으므로 푸젠성의 젠넨기법이 즉시 전해진 듯하다. 자금이 부족해서인지 도자기를 잘라 붙인 장식은 그리많지 않고 첸넨기법의 초기형태인 모르타르에 직접 도색한 장식이 많아 색이 바랜 부분이 많다. 또한 대만처럼 안에 철사 뼈대를 만들지 않고 모르타르만으로 모양을 만든듯,이 묘문은 그나마 온전하나 다른곳은 장식이 통째로 떨어져 나간게 많이 보인다. [본문으로]
  6. 그림에서 보듯 용의 발톱은 4개이다. 그런데 베트남에선 응우엔왕조 왕들을 모두 황제로 부른다. 여기 증거가 있는데? 19시기말 종이호랑이가 되버린 청나라가 겁나지 않은 속국들이 하나둘씩 황제 호칭을 붙인다. 조선 고종황제,베트남의 카이딘황제, 모두 일본과 프랑스의 꼭뚜각시가 되버린 상황이다. 조선은 소급하지 않는데 베트남은 조상에 미안했는지 응우엔 왕조 시조인 지아롱부터 소급적용하여 황제칭호를 붙이게 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