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road/KyotoNara

쿄토-후시미이나리다이샤①

閒林 2018. 11. 3. 06:25

京都-伏見稲荷大社①

(Kyoto-Fushimi Inari Taisha)

 201x. Mid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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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왼쪽의 문이 사쿠라문(楼門)으로 1589년 토요토미히데요시가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지어 올린 문이다. 사쿠라몬이라면 원래 성문에 많이 붙이는 이름인데 진자에도 쓰는 모양이다. 어잿든 모양은 닛꼬의 요메이몬과 많이 닮았다. [본문으로]
  2. 여우는 이나리신의 심부름꾼(使者)이다. 다른 진자에선 고마이누(狛犬)가 진자를 지키는데 이곳에선 여우가 진자를 지키고 있다. 원래는 흰여우(白狐)이다. 좌측 여우는 벼이삭을 물고 있다. [본문으로]
  3. 우측 여우가 물고 있는건 창고 열쇄로 보인다. 여기서 좌우는 풍수에 그렇듯 문에서 보는 방향이다. [본문으로]
  4. 후시미이나리 다이샤는 외국인을 상대로한 설문조사에서 일본관광명소중 가장 좋았던 명소 1위로 항상 선정되는 관광지다. 그 이유로는 아무래도 가장 일본색이 짙기 때문으로 보인다. 서구인들이 특히 좋아한다. 주홍색(朱色) 센본도리이(千本鳥居)와 사당을 지키는 여우상(白狐)이 일본전통을 가장 잘 어필하는 모양이다. 후시미(伏見)는 쿄토 동남쪽에 있는 지역명이고 이나리신(稲荷神)이라는 오곡신을 모시는 사당이다. 이나리신은 자연신중 상급신(大神)으로 그래서 다이샤(大社)란 이름을 붙인다. 이나리신은 추수,수확을 관장하므로 상업과 농업에 관련된 사람들이 많이 찾으므로 진자중 아주 번창하는 진자이다. 일본내 3만개이상이 있다고 하는데 그중 유명한 곳은 이곳 총본궁인 후시미 다이샤 외에, 야마구찌현의 모토노스미(元乃隅) 이나리진자로, 해안절벽위에 길게 늘어선 주홍색 도리이가 배경과 만들어 내는 경치가 유명하다. [본문으로]
  5. 보통 진자에서 소원을 적어 봉납하는 방법으론, 에마(絵馬)를 걸거나 흰종이를 새끼에 묶거나 한다. 에마는 오각형의 나무판 모양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주소성명과 소원을 적어 봉납한다.에도시대 이전에는 국민의 대다수가 문맹이어서 글을 써서 소원을 빌수가 없어 소원을 그림(絵)으로 그려 봉납해야했으므로 에마로 부른다.(처음엔 말그림이었다는 설도 있다). 이나리진자는 에마가 모두 도리이 모양으로 되어있다. 돈 많은 사람들은 거대한 도리이를 세워 봉납하고 일반 서민들은 이렇게 작은 도리이에 작은 소망을 담는다. 여담이지만,일본 선거를 처음 보았을때 아주 의아한 것이 있었다. 투표용지에 후보자이름을 프린트하여 지지 후보에 도장을 찍는 방식이 아니라 지지하는 후보자이름을 직접 투표용지에 적는 방식이었다. 아마 세계 유일임이 분명하다. 일본이 투표용지를 프린트할 기술이나 돈이 없어 이런 원시적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라 매우 의아했었다.특히 대부분 후보자이름이 한자여서 이름을 잘못적어 무효표가 많이 나올텐데도 이런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가 뭘까? 그래서 추론한게, 문맹율이 '0'에 가까운 국가라는 자부심을 드러내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본인이 직접 기입하므로 부정투표를 할수 없다는 장점은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다른 단점들을 상쇄시키기 어렵다. 일본은 에도시대부터 평민(남자는 물론 여자까지도 원하면)을 상대로한 학교가 있었고,메이지시대에 들어서는 전국민의 의무교육이 실시되었다.이 평민교육이 바로 메이지유신의 원동력이 되었던 셈이다. [본문으로]
  6. 이나리산을 일주하면(순례) 소원이 이루어진단다. 일주하는데 반나절이상 걸린다. 나야 뭐 빌 소원도 없거니와 이날 일정이 빠뜻하여 중간에서 내려왔다. [본문으로]
  7. 센본도리이(千本鳥居)는 실제론 1000개가 넘는단다. 아주 작은것과 합하면 경내 도리이수는 1만개가 넘는다고 한다. 특히 입구쪽은 하나 봉납할려면 최소 몇년은 기다려야 한단다.입구쪽은 그야말로 인파에 밀려간다. 이 인파는 첫줄을 지나면 대부분 되돌아가니 사진찍을려면 입구쪽은 피하는게 좋다. [본문으로]
  8. 하타노이로코구(秦伊呂巨(具)가 어느날 떡을 주물러 과녁으로 삼고, 활을 쏘니 그 떡이 흰새가 되어 산위로 날아갔단다.따라가보니 흰새가 앉은 곳에 벼이삭(稲)이 자라고 있었단다. 그 장소를 신성한 장소라 여겨 그곳에 신사를 지었단다.(711년) 왜 이런 전설얘기를 하는가하면 이 진(秦)씨가 신라에서 귀화한 신라인이란 설이 유력하다. 진씨 일족은 쇼토쿠태자시절 일본에 건너와 귀화한 사람들로 일본에 양잠기술과 비단짜는 기술을 전파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곳 신주(神主)는 신라인의 피를 물려받은 걸로 보인다. 가장 일본색이 짙은 진자를 세운 인물이 신라인이라고 생각하면 민족주의에 집착하는게...... [본문으로]
  9. 여기는 이렇게 사람이 없다. 입구에서 먼 도리이 일수록 이렇게 높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