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road/Japan
고야산-금강봉사
閒林
2019. 5. 8. 01:26
高野山 金剛峯寺
(Koyasan-Kongobuji)
201x. Early December
◑ Koyas01 根本大塔, Sony Nex-F3,
◑ Koyas02 大門, Sony Nex-F3,
◑ Koyas03 中門 & 金堂 , Sony Nex-F3,
◑ Koyas04 增長天王, Sony Nex-F3,
◑ Koyas05 蓮池, Sony Nex-F3,
◑ Koyas06 六角経蔵, Sony Nex-F3,
◑ Koyas07 西塔, Sony Nex-F3,
◑ Koyas08 根本大塔, Sony Nex-F3,
◑ Koyas09 御影堂, Sony Nex-F3,
◑ Koyas10 不動堂, Sony Nex-F3,
◑ Koyas11 東塔, Sony Nex-F3,
◑ Koyas12 智泉廟, Sony Nex-F3,
◑ Koyas13 勧学院 , Sony Nex-F3,
◑ Koyas14 勧学院 본전 용머리, Sony Nex-F3,
- 고야산(高野山)은 난카이(南海)전철 노선으로 난바에서 출발 하시모토(橋本)를 거쳐 고쿠라쿠바시(極樂橋)에서 고야산케이블카로 갈아타서 고야산 정상에 도착한다. 고야산케이블카의 시간이 결정하므로 케이블카까지 바로 연결되는 열차를 타는게 좋다. 나는 호텔에서 지하철타고 가기편한 덴카차야(天下茶屋)에서 난카이전철로 갈아탔다. 마침 들어가자마자 도착하는 전차에 올라탔는데, 어라! 하시모토 도착할때쯤 차내방송이 나온다. 12월부터 다음해 2월말까지 고야산케이블 수리관계로 케이블카 운행하지 않으니 하시모토에 내려 준비한 버스로 갈아타란다. 텐카차야역에서는 계속 방송한 모양인데 바로 뛰어 타느라 못들은 거다. 마주보는 좌석에 30대중반으로 보이는 중국인 남성 2명이 타고 있었는데, 전혀 모르는 눈치다.어슬픈 중국어지만 뜻은 통하게 할 정도는 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여행에 끼어드는건 결코 좋은 결과를 낳지 않는걸 알기에 주저했다. 주저하는 사이 역에 도착,결국 그냥 내렸다. 미리 알았더라면 1시간 타고오는 동안 알려줬을지도 모른다고 자위하며. 그런데,이날 오후 고야산에서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타는 순간 그 2명의 중국인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적으로 엄청 당황했다. 1시간 가까이 마주보며 왔던 날 몰라볼리 없다.물론 내가 중국어할수 있다는건 모르겠지만. 고쿠라쿠바시까지 40분걸리니 왕복시간과 차시간 맞추는걸 생각하면 2시간 이상은 손해봤을거다. 어쨋든 엄청 미안했다. [본문으로]
- 고야산(高野山)은 일명 콘고부지(金剛峯寺)라 하며 쿠카이(空海,법명은 코보(弘法大師))가 일본에서 처음으로 진언종(眞言宗)을 개산한 곳이다. 진언종은 티벳불교(밀교)계통이다. 그래서 다른종파에서 볼수없는 기적설화가 쿠카이에 따라다닌다. 쿠카이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승려이다. 산정상은 넓게 평지가 이루어져 있어 정말 좋은 위치를 잘 찾아냈다는 생각부터 든다. 전날 히에이잔을 보고온터라 더욱 비교된다. 산전체가 콘고부지이지만 현재는 마을을 이루고 있기 땜에 고야산이 절이면서 마을이름이 되었다. 개산한 년도는 정확하지 않다. 쿠카이가 히에이잔 엔락쿠지에서 수행한 얘기가 전해져 히에이잔 엔락쿠지보다는 조금 늦은 800년 주변쯤으로 보고있다. 고야산 콘고부지는 히에이잔 엔락쿠지와 아주 대조적이다. 엔락쿠지가 역대 법황과 손을 잡고 정치에 깊숙히 관여하고 막강한 승병을 조직하여 세력을 과시하다가 결국 오다노부나가에 대학살 당하고 절이 불타 완전히 힘을 잃어버린데 비해, 고야산 콘고부지는 처음부터 권력과 손을 끊고 수행집단임을 공포했다. 여러번 풍파에 휩싸일때마다 중립을 선언하고 중재자 역할을 하며 위기를 돌파했다. 그 결과 전국시대도 무사히 넘길수 있었고, 단하나 피할수 없는 적은 화재였다고 한다. 쿠카이가 총명하다는 건 잘알려져 있지만 현재의 쿠카이가 일본 최고의 승려로 숭배될수 있는건 고야산 후대의 역할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본문으로]
- 앞의 건물이 츄몬(中門), 뒤의 건물이 콘고부지(金剛峯寺) 총본당역할을 하는 콘도오(金堂)이다. 고야산 건물은 몇차례의 대형 화재를 겪은터라 원래 건물은 없고 대부분 개축된 건물이다. 1843년 대규모화재에서 중문은 주춧돌만 남은 상태로 방치되다가 2013년 다시 지었다. 그 당시 방송을 본적있는데, 기둥을 따로 고정하는 장치없이 주춧돌위에 그냥 얹어놓은 건물을 지었다. 기둥자체의 무게만으로도 고정된 상태를 유지했다. 주춧돌 표면이 매끈하지 않은 울퉁불퉁한 원래 암석 그대로 인데 그 울퉁불퉁한 표면에 끼워 맞도록 기둥아래면을 손으로 깎아내는 과정이 정말 놀라웠다. 요철에 딱 맞춰진 기둥을 여러명의 장한들이 밀었으나 요동조차 없었다. 지진이 많은 일본에선 이런 건축방식이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왔다. 미야지마의 바다위 도리이도 뻘위에 그냥 얹혀진 상태로 만들어졌고, 대부분의 오중탑(五重塔)도 중심에 기둥(心柱)을 먼저 세워놓고 이 심주에 탑을 연결시켜 얹혀진 모양으로 지어졌다. 히메지죠(姬路城) 같은 성곽의 천수각에도 심주를 사용했으며,도쿄의 스카이트리(Skytree)도 중심에 엄청난 굵기의 콘크리트 심주를 먼저 만들어 놓고 주위 철골을 연결했다. 이렇게 하면 지진이 일어났을때 흔들리는 진폭을 크게 줄일수 있으며 구조물이 땅에 고정되지 않아 땅위에서 미끄러지므로 충격이 크지 않다고 한다. [본문으로]
- 츄몬(中門)에는 사천왕상이 안치되어 있는데, 2천왕상은 대화재때 살려낸 것이고 2천왕상은 현대작가가 새로 조각해 안치한것이다. 보면 나무재질과 느낌이 다르므로 즉시 알수 있다. 사진은 현대작가의 작품인 증장천왕(增長天王像)이다. [본문으로]
- 도바법황(鳥羽法皇)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金泥(금분을 탄 물)로 사경한 경장을 보관한 탑.제2황후였던 후지와라나리코(藤原得子,후에 美福門院이 됨)가 세웠다.도바는 중궁보다 이 나리코를 편애했다.도바와 중궁사이에 난 4째가 고시라카와천황(카마쿠라 하치만구 여행기 참조)으로 비후쿠몬(나리코)은 고시라카와의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다. [본문으로]
- 사이또(西塔)은 1843년 대화제에서 살아남은 탑이라하지만 화재 9년전에 개축하여 그리 오래되지 않는탑이다. 고야산의 동탑,서탑,대탑 모두 이 다보탑(多宝塔)형태로 만들어 졌는데,쿠카이의 설계라고 자랑하는 일본 고유의 건축방식이다. 불국사의 다보탑도 정방형의 기단위에 원형의 단이 올려져 있지만, 이런 건물형태로 짓는건 제법 어려운 모양이다. 진언종계 사원에선 이런 다보탑을 제법 볼수 있는데 미야지마 다이쇼인의 백탑도 동일한 모양이었다 [본문으로]
- 곤본다이또(根本大塔)은 고야산의 상징이다. 20세기초반에 개축된 것으로 철골 콘크리트구조물로 지어졌다. 본래 대탑은 쿠카이가 시작하여 제자인 신젠다이토쿠가 완성한게 일본 최초의 다보탑이란다. 탑앞의 삼엽소나무 주위에는 붉은 목책으로 보호해놨다. 평상시엔 이 나무 주위로 떨어진 소나무 잎 찾는 사람들로 붐빈다. 소나무는 보통 2가닥 잎인데 삼엽송은 드물단다.(흔하지 않나?). 이 3엽을 찾아 지니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나 뭐라나. 원래 이 자리가 고야산의 중심이다. 쿠카이가 중국에서 공부끝내고 돌아올때 명주(明州,현 닝보(宁波)시로 항주 동쪽해안에 있다)에서 삼고 금강저(三鈷 金剛杵,Vajra)를 던졌단다. 금강저는 중앙에 손으로 잡는 부분이 있고 양쪽으로 연꽃을 상징하는 왕관모양의 부분으로 되어있다. 이 연꽃을 상징하는 꽃잎부분(鈷)은 1개부터 9개까지 다양하다. 보통 3개,5개, 9개가 많다. 쿠카이가 던진건 3개짜리인 모양이다. 어쨋든 중국에서 던져진 금강저가 날아와 대탑있는 자리에 꽂혔는데 나중에 쿠카이가 이 자리에 가람을 만들었다는게 고야산의 개산설화이다. 현재 있는 삼엽송은 수십년생정도 되어 보이는데도 영험은 있는 모양이다. 참고로 금강저는 힌두교 천상신 인드라의 무기로 번개를 내리치는 역할을 한다. 티벳밀교에선 가장 중요한 법구(法具)며 다이야몬드보다 더 단단한 젓가락으로 무엇이든 깨뜨려 버리는 도구이다. [본문으로]
- 미에도오(御影堂)은 쿠카이의 초상화를 보관한 건물로 사방 주위로 분수처럼 솟아나는 물줄기를 만드는 파이프가 묻혀져 만약의 화제에 대비했단다. 대화재땐 옆의 금당이 불탈때 불이 옮겨붙지 않게 지붕에 된장을 발라 된장익는 냄새가 진동했다는 일화도.... [본문으로]
- 칸가쿠인(勧学院)은 승려들의 수련도장이다.곤고부지 1/5도 안봤지만 오전이 후딱 지나가는 바람에 오쿠노인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고야산을 하루에 다보는 건 무리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