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road/Japan
닛꾜-도쇼구③
閒林
2017. 6. 19. 22:59
日光-東照宮③
(Nikko-Toshogu)
201x.late May
◑ Picnk30. Sony Nex-F3, SEL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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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陽明門(Yomei-mon)---일본에서 가장 화려한 건물이 도쇼구인데 그 중에서 가장 화려한 부분이 바보 이 요메이몬이다.현판엔 이에야스의 신명 .東照大権現(Toshotaigonken)이 적혀있다. [본문으로]
- 1617년 久能山(Kunozan)에 있던 이에야스(家康)의 유골을 이장하여 세운게 東照宮(Toshogu)이다. 이 일을 주도한게 천태종계 天海(Tenkai)다. 텐카이는 日光작은절의 주지였다고 한다.닛꼬는 에도(東京)에서 정북방향이다. 이에야스가 죽어서도 神이되어 에도를 지키겠다고 유언으로 남겼다고 하는데 왜 동북쪽 귀문이 아닌 정북방인가? 에도를 지킨다면 도카이도의 길목 슨푸나 오다와라가 더 적합한데말이다. 닛꼬는 에도에서보면 너무 떨어져 있다.왕릉을 대비해도 너무 멀다.현실적인 아들 히데타다의 생각은 아닌게 분명하니 텐카이의 생각일 가능성이 많다.(여러사실로 추론한것일뿐).더구나 몇년후 에도의 우에노에 칸에이지까지 세운걸 보면 이 텐카이가 이에야스의 최측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텐카이는 도쇼구를 가져오면서 닛꼬 전체를 손에 넣고 輪王寺(Rinnoji)라는 천태종 대가람을 만들고 도쿄의 우에노까지 손에 넣는다.동북방이 아닌 문제도 이에야스를 우러러보는 손자 이에미츠가 죽어서 귀문의 문제를 해결한다. [본문으로]
- 도쇼구는 2대 히데타다(秀忠) 에 의해 간소히 세워졌으나 히데타다가 죽은후 3대 이에미츠(家光)에 의해 지금의 규모로 개조된다.개조 당시 일본 GDP의 2.8%를 쏟아부었다 하는데,그래도 막부가 무너지지 않은건 히데타다의 현실적 수단과 이에미츠가 펼친 參勤交代(sankinkyotai)정책때문으로 보인다. 히데타다는 젊어서부터 이에야스의 수족노릇을 해야했다. 동서합전인 세키가하라전투에서 늦어 이에야스 눈밖에 났지만 토요토미가를 무너뜨린건 히데타다의 공이다. 이에야스가 죽자 공신들을 숙청하고 형제들을 요소의 다이묘로 두는데 오와리(나고야-가문영지),기주(현 와카야마),미토(현 이바라키)에 믿을만한 형제들을 보낸다. 이들을 고삼계라하여 에도막부를 보호하는데 실제적인 역할을 한다. 나고야는 쿄토로 통하는 길목이고,와카야마는 세토나이에서 해안을 따라오면 반드시 거치는 관문이고 이바라키는 도호쿠에서 내려오는 길목이다. 히데타다는 이상주의인 아버지와 아들과 달리 상당히 현실주의인 걸로 보인다.산킨교타이는 다이묘들의 처와 아들을 에도에 거주케해 인질로 삼고 다이묘들을 1년마다 고향과 에도에 번갈아 살게 하는 제도인데 영지에서 걷어드린 세금을 모두 에도에 소모케하여 국내소비를 늘여 특히 토카이도는 상공업 생산중심이 된다. [본문으로]
- 절의 등급을 알려면 대웅전이나 산문 처마의 T처럼 생긴 부분(이름잊어버렸다)의 갯수를 세면 된다.여기서 보이는 요메이몬은 3단이다. 절의 경우 3개면 본산이거나 조종인경우이다.다이유인 야샤몬은 2개이다. [본문으로]
- 陽明門(Yomei-mon)천장에 그랴진 청룡 그림이다.인파에 휩쓸러가며 찍은건데, 생각보단 잘 나왔다. [본문으로]
- 요메이몬 후면 양쪽에 배치된 해태(狛犾)이다. 좌가 옴,오른쪽이 아. [본문으로]
- 본전쪽에서 바라본 요메이몬.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