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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①Others 2019. 10. 25. 19:53
大阪市立東洋陶磁美術館-①
(Osaka-시립동양도자미술관)
201x. Early December
◑ Yaki01 ,粉靑象嵌 蓮花文 角杯(조선), Sony Nex-F3,
◑ Yaki02 ,靑磁練上 盒(고려), Sony Nex-F3,
◑ Yaki03 ,靑花辰砂 石竹文 筆筒壺(조선), Sony Nex-F3,
◑ Yaki04 ,白磁鐵地 筒形甁(조선), Sony Nex-F3,
◑ Yaki05 ,靑磁陰刻 蓮唐草文 三耳壺(고려), Sony Nex-F3,
◑ Yaki06 ,靑磁象嵌 菊蓮花文 瓜形水注(고려), Sony Nex-F3,
◑ Yaki07 ,靑磁 瓜形甁(고려), Sony Nex-F3,
◑ Yaki08 ,靑磁陽刻 筍形水注(고려), Sony Nex-F3,
◑ Yaki09 ,靑磁陰刻 蒲柳水禽文 淨甁(고려), Sony Nex-F3,
◑ Yaki10 ,靑磁象嵌 蓮唐草文 鶴首甁(고려), Sony Nex-F3,
-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은 도자기로 특성화된 박물관으로 고려청자와 중국 도자기가 적지않게 소장되어있어 세계적으로 제법 명성이 있는 모양이다. 귀국하는날 아침시간이 비는데다 갈곳도 마땅찮은 지라, 타이완 고궁박물관 도자기의 연결편으로 삼아 방문했다.전시된 도자기마다 제목과 설명이 자세히 적혀있어 아주 알기 쉽게 되어있다. 1970년대 아타카(安宅)산업이 도산하는데 이 회사가 모은 도자기가 상당한 가치를 지닌걸 알게된 스미또모(住友)은행(당시 채권단이었다)이 아타카의 수집 도자기를 오사카시에 기증한다. 이어 일본기업과 이병창박사등이 그들의 수집품들을 기증하면서 꽤 이름있는 미술관으로 성장했다. 주로 고려청자와 조선자기, 중국자기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중동지역과 일본도기도 수는 적지만 몇점 보인다. [본문으로]
- 도자기(陶磁器,China)는 토기(土器),도기(陶器), 자기(磁器)로 나눌수 있다. 보통 토기(土器-Terracotta)는 구별해 쓰기도 한다. 토기는 점토를 성형한후 장작불에 구운 원시적인 것을 말하지만. 요즘은 800-900도 가마에서 구워내는게 보통인데,도기,자기와 다른점은 굽는 온도가 낮은것도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유약(釉藥)을 쓰지 않은 것이다. 유약은 수분의 침투를 막고 강도를 높이므로 반영구적 그릇이 된다. 도기는 1300도 이하에서 굽고 자기는 1300도 이상으로 굽는데,가장 큰 차이는 그 원료에 있다. 도기는 흔한 찰흙(粘土)을 사용하는데 비해, 자기는 고령토(高嶺土-고령은 중국지역명이다)라는 백토(白土)를 사용한다. 고령토는 흙이 아닌 보크사이트계의 암석으로,이 돌(고령석-Kaolinite)을 채취하고 절구로 빻아 분말로 만들어 사용한다. 그래서 절구용으로 물레방아간이 필요하므로 유명한 도요는 물이 흐르는 계곡과 가마를 만들기에 적합한 경사를 가진 산비탈을 필수조건으로 했다. 도기는 손가락으로 튕기면 탁한 소리가나지만 자기는 쨍하는 유리같은 소리가 나며 아주 얇게 만들수 있다. 그래서 임진왜란때 왜군이 조선도공을 잡아간건 이 자기기술 때문이다. 전국시대와 모모야마시대 조선의 분청자기 차완은 성한채의 값을 했다는 소문도 있다. [본문으로]
- 일본에 끌려온 조선 도공중 일부가 아리타(有田, 규슈 佐賀県,나가사키 바로 북쪽에 있다)에서 고령토를 발견하고 이곳에 도요를 만든다. 이게 일본 자기의 원조가 되는 아리타야끼(有田焼,일명 伊万里焼-이마리는 아리타야끼를 수출하던 항구)이다. 일본어로 도자기는 야끼모노(焼物)라한다. 아리타에는 조선식 건물들이 제법 남아있고 조선도공의 우두머리였던 이삼평(산페이로 부른다)을 모시는 진자도 있다.끌려온 장인들이 꽤 고생했을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오히려 조선보다 장인을 대접하는 일본이 살기편했다. 에도시대 임금이 가장 높았던 직종이 大工(목수)였다. 에도막부초 조선은 통신사를 보내 끌려간 조선인(도공목공등 기술자가 대부분이었는데 조선은 30만이라하고 일본은 2-3만이라했다,)을 송환시키는 협상을 하게되는데 많은 이들이 귀환을 거부했다고 한다. 통신사였던 이경직은 부상록에서 이들을 "가증스럽기 짝이없다."라고 욕했다. 사농공상의 신분사회가 분명한 조선에서 천하게 사느니 대접잘받는 곳에서 살려는게 왜 가증스러운가? 자기들의 잘못이 뭔지는 전혀 깨닫지 못하는 양반식 사고다. 이 현상은 21세기에도 이어지는데 한국만큼 기술자가 대접못받고 싸구려인 나라는 없다. 지금 나라를 떠받치는 중심은 그들이 천히 여기는 공상직종이다. 사(士)는 미래를 보는 눈이 없는 인물들 뿐인데, 맹신하듯 떠받드는 세력이 많다. 500년간 사회를 지배하던 유학이 아직도 뿌리가 살아있는 모양새다. [본문으로]
- 1864,1876 두번의 파리 만국박람회를 통해 일본붐이 일어나며, 출품했던 아리타야끼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아편전쟁이후 통치력을 상실한 淸은 더이상 안정적인 도자기 공급원이 되지못하던 참이라 공급원이 일본으로 이전된다.아리타야끼와 비단,잠사는 수출 주력상품이 되어 제국화의 자금줄이 되는데, 이 모두가 한반도에서 홀대하던 기술이 일본에 전해진 것으로,결국은 창칼이 되어 돌아와 반도는 일본제국의 식민지가 된다. 20세기 들어 도자기대체품들이 대량생산되기 시작하면서 수공으로 만드는 아리타야끼는 경쟁력을 상실하고,도공들은 예술가로 전업한다. 그래서인지 근현대 일본 자기를 보면 예술적으로 아주 뛰어난 작품이 많다. 뛰어난 일본 도자기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아쉽게도 오사카도자기미술관에는 근현대 일본도자기는 없다. [본문으로]
- 위의 사진은 이병창박사(李秉昌)가 기증한 자기들이고, 여기서부터는 일본기업과 가문의 기증품이다. [본문으로]
- 청자는 특유의 유약(釉藥)으로 비색(蜚色)을 낸다. 중국에서 시작했으나 고려에 전해져 고려특유의 상감기법이 더해져 최고걸작이 나온다. 상감기법은 모양을 파낸후 파낸곳에 색토(色土)를 넣고 굽는기법이다. 이 주전자는 먼저 계란모양의 병을 만들고 참외모양으로 8면을 깎아낸뒤 각면에 국화문양과 연꽃문양을 번갈아가며 집어넣었다. 꽃은 백토를 넣고 줄기와 잎(당초문)은 흑토를 채웠다. [본문으로]
- 한국 국립박물관에도 비슷한 죽순주전자가 있는데, 한국거는 잎맥도 음각으로 파놓고 잎수도 다르다. [본문으로]
- 이 학모가지병은 역(逆)상감기법이다. 문양은 그대로 두고 배경부분을 긁어낸뒤 백토를 채웠다. 역상감기법으로 만든 학모가지병은 세계에서 이것 단하나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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